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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숙 문화칼럼] 청노루 구름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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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형숙 작성일21-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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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형숙경주시내에서 건천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가다 건천읍 모량교회 앞에서 왼쪽 방내리 방향으로 꺾어 3,4분 가량 운전을 하면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생가(生家)가 나타난다.
   경주시가 지역 문인들의 협조를 얻어 2014년 시인의 생가 집터에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관람객과 함께 시 낭송 행사도 할 수 있는 낭송장을 갖춘 아담한 규모의 생가를 복원하고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복원된 생가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널찍한 주차장도 갖추어져 있지만, 주도로에서 생가까지 들어오는 진입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골 좁은 도로인데다, 또 복원 이후 홍보가 미비하기도 하였던 이유 등으로 안타깝게도 관람객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찾는 사람 없어 쓸쓸한 생가 마당에 서 있노라면 20대의 대부분까지를 고향인 경주에서 생활하던 목월 시인의 서정이 현대에 맥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7,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나그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 머언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청노루)' 같은 목월의 시 구절 하나쯤은 들어봤을 만큼 그는 향토적 서정과 자연과의 교감을 전통적인 운율에 담아낸 독보적인 시인이었다.
   '북에는 소월(김소월), 남에는 목월(박목월)'로 쌍벽을 이루며 우리 민족의 서정을 이어 온 시인의 흔적이 오늘날에는 말 그대로 흔적으로만 남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들었다.
   경주는 신라 천 년 문화의 찬란한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일 뿐만 아니라 김동리, 박목월과 같은 우리 문학사의 큰 산맥을 품고 있는 문화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한글작가대회 제1회 대회가 2016년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이후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도 그런 문화적 배경에 힘입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두 산맥을 기억하고 문학적 성과를 이어가고자 할 경주의 청소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경주 출신의 또 한 시인인 주한태 시인이 박목월생가터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작은 농막을 하나 짓고 여기에 '청노루 구름둥지'라 이름 붙여 박목월 시인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유지들의 근거를 하나 마련하였다.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한 주시인은  시 전문지 '심상(心象)'과 인연을 맺은 후 목월 시인의 서정에 뒤늦게 흠뻑 빠져 목월의 그늘을 널리 키워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생가터 곁에 작은 농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시도 쓰고 목월을 기리는 이들도 불러 모아 목월의 정신을 되살려보고자 한다고 했다. 
   청노루는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목월이 교감하던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상상의 동물로 목월이 조지훈, 박두진 두 시인과 공동으로 낸 첫 시집 '청록집'에 실린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머언 산 청운사 / 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 /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 맑은 눈에도는 / 구름  (시 '청노루' 전문)
   농막은 이름에 걸맞게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위 사방으로 펼쳐진 논밭들, 그 논밭들을 단석산을 비롯한 낮으막한 경주의 야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가히 청노루가 뛰어놀만한 공간에 어울릴만하다 싶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목월의 시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면, 평창의 효석숲이나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에 못지 않는 문학관광지로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주시인께서 이곳에 구름둥지를 지은 의도라고 한다.
   이곳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목월생가를 방문하는 누구나 슬쩍 들러서 찬물 한 그릇 마시고 가도 좋고 목월의 시를 한 수 읽고 가도 좋다고 한다.
   경주시민들의 외면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박목월 생가 관광지화가 이런 뜻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계기로 되살아나고 더불어 목월 시인의 향기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해 본다.
소설가 서형숙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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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